최근 대형 석유화학회사, 창고들의 안전사고가 보도되고 있어 우리 사회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들은 인명피해와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히고 있어서 코로나 19로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더 큰 부담을 우리 사회에 안겨주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약 20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해온 저의 경험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안전사고의 사각지대에 있는 또 하나의 위험한 요소는 대학 연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 연구실 수는 약 7만 6천 개에 달하며, 이 중에서 인체에 유해하거나 폭발성 물질을 사용하는 연구실은 전체 연구실의 60%에 해당합니다. 더욱더 두려운 통계는 대학 연구실에서 1년 동안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건수입니다. 2018년 통계에 의하면 대학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전체 사고의 83%에 달하고 있으며, 연평균 100건 이상으로 약 3일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 경쟁이 치열한 이공계 대학사회에서 대학원생들은 교수들로부터 연구 결과를 재촉받고 있으며, 일상근무시간을 초과하는 것은 일상이고 주말 실험 또는 밤샘 실험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더욱더 무서운 사실은 학생들이 근무하는 환경이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대학 실험실에서 보유하고 있는 시약들은 연구실당 약 300-1000여 종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 물질은 대부분 인체에 해로운 화학물질들입니다. 더욱이 대학 연구실들은 관리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탓에 사용이 끝난 시약들이 그대로 시약장에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학생들은 수백-수천 종의 유해 화학물질들이 방치된 실험실에서 밤샘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과대학에 근무하면서 몇 개의 안전사고를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어서 저는 우리나라 대학 실험실의 안전문화를 개선하여 연구 선진국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도록 노력해 보고자 합니다. 그 첫걸음으로 <학생들과 함께 시약 졸업시키기 운동>을 전개하고 싶습니다. 제가 놀란 사실은 제가 석사학위를 받았던 1990년 당시 사용하던 시약이 아직도 모교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물론 위험한 시약은 아니었지만, 무려 40여 년 동안 시약장에 사용되지 않은 유기화합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 실험실에는 사용할 만큼의 최소한 시약만을 보관하고, 사용이 끝난 후에는 적절히 폐기해야 합니다.
첨단 연구를 수행하는 우리나라 대학 이공계 실험실에는 인체에 해로운 수은 등의 유해물질/나노 입자/유기용제/폭발성 가스 등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물질들을 잘 활용하여 좋은 연구 결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연구가 끝난 후 적절한 폐기 절차를 잘 준수해 주는 것도 뒷마무리를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공과대학의 교수로서 동료 교수님들과 연구자분들께 새로운 문화로서 학생을 졸업시키면 시약도 졸업시키는(폐기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네이쳐> 잡지에서 우리나라가 기획 연구로서 전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점이 특집으로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부디 우리나라의 연구 안전문화도 철저한 방역을 통하여 전 세계의 모범이 되었으면 합니다.
대한연구환경안전협회 회장
고려대 공과대학 화공생명공학과 교수
강정원
주소 : 서울 관악구 관악로 1 서울대학교 환경안전원 97동 304호
홈페이지 : http://www.labsafety.or.kr